澤山咸
주역 64괘 · 제31괘

택산함 — 느낌, 마음 없이 감응하는 것

兌上艮下 · 위는 못(兌), 아래는 산(艮)
산 위에 못이 있는 상 — 하경(下經)을 여는 첫 괘
咸 亨 利貞 取女吉
함은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우니,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

괘사 풀이 取女吉

함(咸)은 모두라는 뜻이지만 이 괘에서는 감(感), 곧 느낌으로 읽는다. 감(感)에서 마음 심(心)을 뺀 글자가 함(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의도적으로 마음을 쓰는 감정이 아니라 저절로 일어나는 감응을 가리킨다.

괘상이 그 감응의 조건을 보여준다. 위는 못(兌)이라 기뻐하고 아래는 산(艮)이라 멈춰 있다. 젊은 남자(艮)가 아래에서 멈추고 젊은 여자(兌)가 위에서 기뻐하는 배치이며, 남자가 먼저 자기를 낮춘 형국이다.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取女吉)는 판정이 여기서 나온다. 다가서되 강요하지 않는 자세가 감응을 만든다.

서괘전의 자리 序卦傳

함괘는 하경(下經)의 첫 괘다. 상경이 건곤에서 시작해 천지와 자연의 이치를 다뤘다면, 하경은 함괘에서 시작해 인간 관계와 사회를 다룬다. 서괘전 하편은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뒤에 남녀가 있고, 남녀가 있은 뒤에 부부가 있다"는 계보로 이 자리를 설명한다.

잡괘전은 "함은 빠름이다(咸速也)"라고 했다. 감응은 계산을 거치지 않으므로 빠르다. 다음 괘인 항(恆)이 오래감(久)인 것과 짝을 이루며, 빠른 것과 오래가는 것이 나란히 놓인 배치가 이 두 괘의 관계를 말한다.

대상전 — 허수인 大象傳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비움으로써 사람을 받아들인다(山上有澤咸 君子以虛受人)." 산꼭대기가 우묵하게 비어 있어야 물이 고인다. 허(虛), 곧 비움이 감응의 전제라는 것이다. 이미 채워져 있으면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지식이나 도량의 크기가 아니라 비어 있는 정도에서 나온다는 관점이며, 함괘 전체를 관통한다.

여섯 효 — 발끝에서 뺨까지 爻辭

함괘의 여섯 효는 신체 부위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감응이 어디까지 닿았는지 표시한다. 엄지발가락에서 종아리, 넓적다리, 등살, 그리고 뺨과 혀까지.

초육咸其拇엄지발가락에 느낀다.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미미한 감응.
육이咸其腓 凶 居吉종아리에 느낀다. 흉하나 머물러 있으면 길하다 — 먼저 움직이면 안 되는 자리.
구삼咸其股 執其隨 往吝넓적다리에 느낀다. 따르는 데만 매이니 나아가면 부끄럽다.
구사貞吉悔亡 憧憧往來바르면 길하고 후회가 없다. 마음이 어지러이 오가면 벗만이 네 생각을 따른다.
구오咸其脢 无悔등살에 느낀다. 후회가 없다 — 보이지 않는 곳, 사사로움이 닿지 않는 자리.
상육咸其輔頰舌뺨과 혀에 느낀다. 말로만 감응하는 상태.

구사의 동동왕래(憧憧往來)가 이 괘의 핵심 경고다. 마음이 분주히 오가며 계산하면 뜻이 통하는 범위가 자기 무리로 좁아진다고 한다. 계사전은 이 효를 길게 풀며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근심하겠느냐고 되묻는다. 애써 감응시키려는 순간 감응이 아니게 된다는 것.

상육의 함기보협설(咸其輔頰舌)이 마지막에 놓인 이유도 같다. 뺨과 혀, 곧 말로만 통하는 상태는 감응의 가장 얕은 형태다. 몸의 가장 위에 도달했지만 가장 피상적인 자리다.

현대적 적용

택산함은 연애와 결혼, 새로운 만남, 협력 관계의 시작, 상대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국면에서 나온다. 형통한 괘이며 관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판정이다.

실무적으로 유효한 것은 대상전의 허수인이다. 상대를 설득하려 준비를 채워 가는 것보다 비우고 듣는 쪽이 이 괘의 방식이다. 그리고 구사의 동동왕래를 자기 점검에 쓸 만하다. 지금 상대의 반응을 계산하며 여러 수를 두고 있다면, 그 계산 자체가 감응을 막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육이의 판정도 실용적이다. 느꼈다고 곧바로 움직이면 흉하고 머물러 있으면 길하다. 함괘는 빠른 괘지만 먼저 움직이는 쪽을 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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