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萃)는 모인다는 뜻이다. 땅 위에 물이 고여 못을 이루듯 흩어진 것이 한곳에 모이는 국면이다.
괘사가 제시하는 장면이 왕격유묘(王假有廟), 왕이 사당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을 모으는 방법으로 주역이 제시하는 것이 제사, 곧 공통의 상징과 의례다. 명령이나 이익이 아니라 함께 우러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모임이 성립한다는 관점이다. 이어 큰 제물을 쓰라(用大牲吉)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이는 데는 비용이 든다.
"사물이 서로 만난 뒤에 모이므로 췌로 받았다. 췌란 모임이다(物相遇而後聚 故受之以萃 萃者聚也)." 구괘의 만남이 개별적 접촉이라면 췌괘는 그것이 집단으로 발전한 상태다. 서괘전은 조직의 형성을 만남의 누적으로 설명한다.
8번 비(比)괘가 누구에게 붙을 것인가를 다뤘다면 췌괘는 무엇을 중심으로 모일 것인가를 다룬다. 비괘의 중심이 사람이었다면 췌괘의 중심은 사당, 곧 공유하는 상징이라는 점이 다르다.
"못이 땅 위에 오른 것이 췌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병장기를 손질하고 예기치 못한 일을 경계한다(澤上於地萃 君子以除戎器 戒不虞)." 모임의 괘에서 대상전이 지시하는 것이 무기 정비와 경계다. 축하가 아니라 대비다.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다툼과 사고가 따라오고, 물이 한곳에 모이면 넘칠 위험이 생긴다. 성대한 자리일수록 사고 대비가 앞서야 한다는 실무적 감각이다.
췌괘의 효사는 모이는 과정의 혼란과 소외를 다룬다. 울다가 웃고, 탄식하고, 눈물을 흘린다. 모임이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관찰이다.
| 초육 | 有孚不終 乃亂乃萃 往无咎 | 믿음이 끝까지 가지 못해 어지럽게 모인다. 부르짖으면 한바탕 웃음이 되니 나아가면 허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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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이 | 引吉无咎 孚乃利用禴 | 이끌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믿음이 있으면 간소한 제사라도 이롭다. |
| 육삼 | 萃如嗟如 无攸利 小吝 | 모이려다 탄식한다. 이로울 바 없으나 나아가면 허물은 없고 조금 부끄럽다. |
| 구사 | 大吉无咎 | 크게 길해야 허물이 없다. 아래를 모으는 자리이나 신분이 애매함. |
| 구오 | 萃有位 无咎 元永貞 悔亡 | 모임에 자리가 있어 허물이 없다. 으뜸이고 오래고 바르면 후회가 없어진다. |
| 상육 | 齎咨涕洟 无咎 | 탄식하며 눈물 콧물을 흘린다. 허물은 없다 — 모임 밖으로 밀려난 자리. |
구오의 췌유위 비부(萃有位 匪孚)가 이 괘의 정곡이다. 자리는 있는데 믿음이 없을 수 있다는 것. 직위가 있다고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원영정(元永貞) 세 글자가 다시 요구된다. 8번 비괘 괘사에 나왔던 검증 항목이 여기서 반복된다.
상육의 재자체이(齎咨涕洟)는 모임에서 소외된 자리다. 흉하다고 하지 않고 허물이 없다(无咎)고만 판정한 점이 특이하다. 모이지 못한 것이 반드시 잘못은 아니라는 여지를 남긴다.
택지췌는 조직 결성, 행사와 모임, 사람이 모이는 사업, 팀 구성에서 나온다. 형통한 괘이며 모임 자체는 긍정된다. 다만 이 괘의 실제 정보는 준비 쪽에 있다.
대상전의 제융기 계불우가 첫 지침이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기획하고 있다면 잘될 경우가 아니라 사고 날 경우를 먼저 준비하라는 것. 두 번째는 괘사의 왕격유묘다. 모임의 구심점이 무엇인지 분명해야 한다. 이익만으로 모인 집단은 이익이 사라지면 흩어진다. 세 번째는 구오다. 직위나 명분이 있다고 신뢰가 따라오지는 않는다. 모으는 사람이 실제로 믿음을 얻고 있는지가 이 괘의 성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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