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謙)은 낮춤이다. 괘상이 그 뜻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艮)이 땅(坤) 아래에 있다. 높은 것이 낮은 자리에 있는 형상이며, 없는 것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낮추는 것이 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괘사의 군자유종(君子有終)에서 끝맺음(終)이 핵심이다. 겸은 시작을 화려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끝까지 간다. 64괘 중 여섯 효 전부가 길하거나 이롭다고 판정되는 괘는 겸괘 하나뿐인데, 이것이 겸손이 도덕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실패 요인을 만들지 않는 처신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어둘 만하다.
"크게 가진 자는 가득 채워서는 안 되므로 겸으로 받았다(有大者不可以盈 故受之以謙)." 대유 다음에 겸이 오는 배치가 주역의 논리를 압축한다. 많이 가진 상태 자체가 다음 국면의 위험이 되며, 그것을 상쇄하는 유일한 방법이 스스로 덜어내는 것이다.
잡괘전은 다음 괘와 짝지어 말한다. "겸은 가볍고 예는 게으르다(謙輕而豫怠也)." 여기서 가볍다(輕)는 것은 자신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땅 가운데 산이 있는 것이 겸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많은 데서 덜어 적은 데 보태고, 사물을 저울질하여 고르게 베푼다(地中有山謙 君子以裒多益寡 稱物平施)." 겸손을 태도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로 옮겨놓은 대목이다. 많은 쪽에서 덜어 적은 쪽에 더하는 것(裒多益寡), 저울질해서 고르게 베푸는 것(稱物平施). 마음가짐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나누는가로 겸을 정의한다.
겸괘의 여섯 효에는 흉이 없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겸의 표현이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구성이며, 구삼이 이 괘의 중심이다.
| 초육 |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다. 이로써 큰 내를 건너니 길하다. |
|---|---|---|
| 육이 | 鳴謙 貞吉 | 겸손이 울려 드러난다. 바르면 길하다 — 안의 것이 밖으로 알려지는 자리. |
| 구삼 | 勞謙 君子有終 吉 |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하다. 군자가 끝맺음이 있으니 길하다. |
| 육사 | 无不利 撝謙 | 이롭지 않음이 없다. 겸손을 널리 베푼다. |
| 육오 | 不富以其鄰 利用侵伐 | 부유하지 않아도 이웃과 함께한다. 정벌함이 이로우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
| 상육 | 鳴謙 利用行師 | 겸손이 울린다. 군사를 움직여 자기 고을을 다스림이 이롭다. |
구삼의 노겸(勞謙)이 이 괘의 정점이다. 공이 있으면서 낮추는 것 — 공이 없는 사람의 겸손은 겸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계사전은 이 효를 두고 공이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덕이 두터워도 아래에 처한다고 풀었다. 겸괘 여섯 효 중 유일한 양효가 여기 있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육오와 상육에서 정벌(侵伐)과 행사(行師)가 나오는 것을 의아하게 보는 독자가 많다. 겸이 무기력이나 무저항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낮춘다는 것과 물러선다는 것은 다르며, 겸괘에서도 쳐야 할 때는 친다.
지산겸은 성과를 낸 직후, 승진이나 인정을 받은 시기,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국면에서 자주 나온다. 이 괘를 얻었다면 판정 자체는 걱정할 것이 없다. 주역에서 가장 안전한 괘다.
다만 겸을 태도로만 이해하면 이 괘를 절반만 쓴다. 대상전은 분배를 말하고 있다. 성과가 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나누는가, 몫을 어디서 덜어 어디에 보태는가가 실제 실행 항목이다. 그리고 구삼을 기준으로 자기 위치를 점검할 만하다. 공이 있는데도 낮추고 있는가, 아니면 공이 없어서 낮추고 있는가. 앞의 것만 겸이며 끝맺음(有終)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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