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漸)은 차츰 나아간다는 뜻이다. 산 위에 나무가 자라니 하루아침에 높아지지 않는다. 46번 승(升)괘가 땅속에서 자라는 느린 성장이었다면, 점괘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순서 있는 진행이다.
괘사가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길하다(女歸吉)고 한 이유가 여기 있다. 혼례는 육례(六禮)라 하여 정해진 절차를 하나씩 밟는다. 순서를 건너뛰면 예가 아니게 된다. 점괘가 말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순서이며, 단계를 지키는 것이 이 괘의 바름(貞)이다.
"사물은 끝내 그칠 수 없으므로 점으로 받았다. 점이란 나아감이다(物不可以終止 故受之以漸 漸者進也)." 간괘의 멈춤 다음에 오는 나아감이다. 다만 멈췄다 다시 움직이는 것이므로 급하게 갈 수 없다. 서괘전의 배치가 이 괘의 속도를 이미 정해두고 있다.
다음 괘가 귀매(歸妹)라는 점이 대비를 만든다. 점괘가 절차를 갖춘 혼인이라면 귀매는 절차가 어긋난 혼인이다. 같은 소재를 정반대로 다룬 두 괘가 나란히 놓였다.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점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어진 덕에 거하여 풍속을 좋게 한다(山上有木漸 君子以居賢德善俗)." 풍속을 바꾸는 일은 명령으로 되지 않는다. 오래 그 자리에 있으면서 서서히 물들이는 방식이며, 나무가 자라 산을 더 높아 보이게 하는 것과 같다. 점괘의 영향력이 강제가 아니라 축적에서 나온다는 관점이다.
점괘의 여섯 효는 기러기(鴻)가 나아가는 곳을 차례로 짚는다. 물가에서 반석으로, 뭍으로, 나무로, 언덕으로. 순서를 건너뛰지 않는 이 괘의 문법이 그대로 드러난다.
| 초육 | 鴻漸于干 小子厲 无咎 | 기러기가 물가로 나아간다. 어린아이는 위태롭고 말이 있으나 허물은 없다. |
|---|---|---|
| 육이 | 鴻漸于磐 飲食衎衎 吉 | 기러기가 반석으로 나아간다. 먹고 마심이 즐거우니 길하다. |
| 구삼 | 鴻漸于陸 夫征不復 凶 | 기러기가 뭍으로 나아간다. 남편이 가서 돌아오지 않고 아내가 잉태해도 기르지 못하니 흉하다. |
| 육사 | 鴻漸于木 或得其桷 无咎 | 기러기가 나무로 나아간다.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다. |
| 구오 | 鴻漸于陵 婦三歲不孕 終吉 | 기러기가 언덕으로 나아간다. 아내가 삼 년을 잉태 못 하나 끝내 이기지 못하니 길하다. |
| 상구 | 鴻漸于陸 其羽可用為儀 吉 | 기러기가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그 깃털을 의식에 쓸 만하니 길하다. |
구삼이 이 괘에서 유일한 흉효다. 기러기가 물을 떠나 뭍으로 나왔는데, 이는 제 자리가 아니다. 남편이 떠나 돌아오지 않고 아내가 아이를 기르지 못한다는 표현이 뒤따른다. 순서를 어기고 제 자리가 아닌 곳으로 나아간 결과이며, 점괘가 가장 경계하는 상태다.
상구가 결론이다. 기러기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 그 깃털이 의식에 쓰인다. 개체는 지나가지만 남긴 것이 본보기가 된다는 뜻으로, 절차를 지켜 끝까지 간 것의 결과다.
풍산점은 단계적 진행이 필요한 일, 결혼과 관계의 진전, 경력 축적, 조직 내 신뢰 형성에서 나온다. 길한 괘이며 방향은 나아감이다. 다만 속도를 올리지 말라고 한다.
실무적으로 가장 유효한 것은 구삼이다. 지금 단계를 건너뛰려 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라는 것. 절차를 생략해 얻은 진전은 이 괘에서 흉으로 판정된다. 반대로 구오는 삼 년이나 성과가 없는데도 끝내 길하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 자체는 이 괘에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대상전의 거현덕선속 — 사람과 조직을 바꾸려면 오래 그 자리에 있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조언이 함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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